합천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이 있어 어릴 때 수학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답니다. 역사를 더듬어 보면 태조7년 그러니까 1398년 강화도 선원사에 있는 고려 팔만대장경판을 지천사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 곳으로 옮겨와 호국신앙의 요람이 되었다고 하지요.
그 후 세조가 장경각을 확장하였으며 그의 유지를 받든 왕대비들의 원력으로 금당벽우를 이룩하게 되었고 제9대 성종 때 가람을 대대적으로 증축했다고 합니다.
큰 길에서부터 해인사를 들어가는 길목이 참 아름답지요. 드라이브코스로도 각광답는 곳이 될겁니다. 여기는 해인사 바로 입구입니다.
입구에 고사목이 있는데 이 나무는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에 순응과 이정 이라는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어 왕이 이 은덕에 감사하여 두 스님이 수행하던 자리에 해인사를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때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 느티나무는 1200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하여 오다가 1945년에 수령을 다하여 고사하고 지금은 둥치만 남아 묵묵히 해인사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답니다.
해인사로 들어가는 문턱은 왜 이렇게 휘어졌을까요? 이곳 대부부의 문턱들은 이런 모양으로 휘어져 있답니다.
해인사 건물입니다.
대웅전 뒷편으로 가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지요.
낑낑대고 올라가니 맙소사 팔만대장경은 전혀 볼 수 없네요. 경비아저씨가 출입금지라고 못 들어가게 합니다.
슬며시 문턱에서 카메라로 한방 찍긴 했는데 안으로 통하는 문만 보일 뿐이네요. 어떻게 봐야죠? 하니까. 지나가다 창살 틈으로 멀리서 바라보라는 군요. 창살이 얼마나 좁고 안이 어두운데 아무 것도 안 보입디다.
맨 끝으로 가니 사진으로 내부를 볼 수 있었지요. 그래서 사진일지라도 한컷 올려 봅니다. 팔만대장경 보관은 이렇게 하고 있다고 하네요.
팔만대장경과 장경각은 고려 때 몽고의 침입에 따른 국난 극복을 기원하고 16년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경관의 나무는 자작나무로 바닷물에 3년간 담갔다가 소금물에 삶아 그늘에 말려 양각한 것이라고 하네요.
팔만대장경 견본이라고 전시를 해 놓았네요. 아마도 관광객들의 항의가 많았나 봅니다. 이렇게라도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해인사 옆으로 가니 학사대라는 곳이 있습니다. 학사대는 신라 말기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말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서에 몰입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때 수 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거꾸로 꽂아 놓았던 전나무 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가 아래로 쳐져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죠.
가야산 방향으로 내려가면 외나무다리가 있는데 해인사 외나무다리는 숭유억불정책이 행해진 조선시대 때 말을 탄 양반이 법당 앞까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하며 언제부턴가 이 다리를 건너야 극락에 도달한다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답니다.
다리 입구에 적혀 있는 글귀를 담아 봅니다.
[다리에 소와 말이 지나는 것을 꺼림이니 후세 사람들은 이를 본보기로 삼을 지니라
옛날부터 한가닥으로 건너 지름이니 삼가 첨가하거나 덧붙이지 말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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