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하면 조선시대 6대 왕인 단종을 기억하게 되죠.
오늘 영월로 관광을 오면서 처음 들린 곳이 단종이 잠들고 있는 장릉이었습니다.
영월시내 한가운데 자리잡은 장릉은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경관 속에 묻혀 있지만 뭔가 모르게 애처로운 느낌이 다가옵니다.
단종은 아버지 문종이 재위 2년만에 승하하자 1452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지만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3년만인 1455년에 왕위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였지요.
질곡 많은 어린 임금과의 인연으로 오랫동안 왕과 함께 울었던 영월 땅은 그의 생애 끝에서도 넓고 따뜻한 품을 내어주고 영원한 휴식을 선사했다고 합니다.
중종 때부터 조정에서 단종의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나오면서 선조 때 상석, 표석, 장명등, 망주석이 세워졌다고 하며, 숙종 24년에 복위시켜 장릉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단종역사관
정문을 들어서면 단종의 역사관이 있습니다.
그래도 단종과 장릉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려면 역사관을 들어가 봐야겠죠.
창덕궁에서부터 광나루를 거쳐 여주 이포나루, 어수정과 원주, 어음정, 배일지재, 옥녀봉, 청령포로 유배 되어 온 지도가 있고 조선왕계도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단종역사관에서 이것 저것 역사공부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왕릉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푸르름이 싱그러움을 더하는 숲속으로 계단을 타고 올라갑니다.
울창한 숲길이죠
소나무에는 솔방울이 많이 달려 있네요. 원래 솔방울은 생육조건이 좋지 않을 때 종족보존을 위해 많이 달린다는 설이 있는데...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니 저만치 잘 정돈된 왕릉이 눈에 들어옵니다.
장릉
단종이 잠들고 있는 능침입니다. 단종은 승하한지 241년 만인 숙종 24년에 왕으로 추복되어 장릉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봉분아래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는데 이름은 정령송이라 합니다.
정령송은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의 능인 사릉에서 이식해온 것이라고 하는데 정순왕후가 어린 소나무가 되어 묵묵히 단종의 곁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라네요.
석물
봉분 앞에 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한 쌍이, 그 아랫단에 장명등과 문인석, 석양, 석호가 있습니다.
복위 왕릉이라 무인석이 생략되고 석물도 작은 편이네요.
홍살문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입니다.
능 앞에 세우는 붉은색 나무문으로 홍문 또는 홍전문이라고도 부르죠.
참도를 따라 들어가면 제정으로 쓰이는 우물 영천이 있습니다.
신도
신들만 걸어간다는 신도라 합니다. 아마 제향 때 이 길을 통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정자각
한식날 단종제향 때 제물을 올리는 정자각이라 합니다.
T자 모양으로 건립된 제전이라 하여 정자각 또는 배위청이라 합니다.
영천
장릉 서쪽에 있는 우물입니다.
정조 15년에 어명으로 박팽년의 후손인 영월부사 박기정이 수축하였다 합니다.
보통 때에는 조금씩 솟았던 샘물이 매년 제향을 지낼 때에는 많은 물이 용출한다는 이야기 있습니다.
배식단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들을 위해 제향을 올리는 곳입니다.
왕 제향과 충신 제향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죠. 이토록 많은 충신이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엄흥도 정려각
17세에 승하한 단종의 시신을 염습하여 현 장릉인 엄씨의 선산 동을지산에 암장하고 자취를 감춘 충신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이라 합니다.
고종 16년에 이르러서야 충의공이란 시호가 내려 졌다고 하죠.
재실
장릉을 지키는 참봉 한 사람과 수호군이 기거했다는 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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