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말레이시아 사라와크 이반족 단기선교를 마치고

아침햇쌀 2019. 7. 28. 22:02

2019년 7월7일부터 12일까지 5일간의 일정으로 이천중앙교회 장로 21명은 담임목사님 내외분과 함께 말레이시아 사라와크 이반족 선교활동을 위해 기도 가운데 여정을 나섰습니다. 목적하는 선교활동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하기 위하여 화이팅을 외치며 ~~~^^



인천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마친 우리 일행은 8일 00시15분 말레이시아 항공편으로 출국. 6시간10분 정도 비행 후 아침 5시25분(한국시각 6시25분)에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



말레이시아를 처음 방문하는 나는 선교와 함께 말레이에 대한 공부도 할 겸 참 좋은 기회였습니다.



말레이시아 지도죠. 왼쪽 길게 있는 곳이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가 있는 서말레이시아, 오른쪽 섬 중 사선 위쪽이 동말레이시아입니다. 우리 일행의 선교 목표지입니다.

말레이시아는 두개의 나라가 합쳐진  연방국가로서 1641년 네덜란드가 말라카를 점령하고 1819년 영국이 싱가포르 섬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1867년 말라카, 싱가포르, 페낭 섬을 중심으로 하는 해협식민지의 지배권을 획득하였습니다.



1941년 일본이 말라야를 침공하고 1942년 싱가포르를 점령하였지만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1946년 영국의 지배 정책에 반대하는 통일 말레이 국민조직이 결성되었습니다. 그후 1948년 페낭 섬이 말레이 반도에 합류하고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것이죠. 말레아, 싱가포르 및 영국의 이전 식민지이면서 보르네오 섬에 위치한 사라와크와 사바가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으로 합병하게 되었습니다.



위 지도가 우리가 가야할 선교지입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8시30분 국내 연결편을 이용해 2시간 비행 후 10시40분 시부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시부지역 모습입니다. 큰 강줄기에 풍족한 물이 흐르고 있네요. 물이 많이 흐른다는 것은 마음을 편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왠 일인지 물이 황토색 흙탕물이네요. 참 특이한 모습입니다.



아주 넓다란 산인지 들판인지 경지정리가 된 듯 규모가 큰 밭들이 있습니다. 거의 같은 작목인 것 같았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이 넓은 면적의 식물들은 야자나무였답니다. 야자농사가 대규모로 지어지고 있는 것이죠. 말레이시아의 주소득원인 것 같습니다.



공항에 착륙해서 대기해 있던 선교사와 미팅 후 선교센터로 이동하여 사라왁으로 가기 위한 짐 정리를 하고 몇 대의 차량에 탑승 후 출발하였습니다.



이곳이 사라왁지역의 선교를 담당하는 시부선교센터입니다. 신정채 선교사님이 파송되어 24년째 선교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를 국가종교로 하고 있습니다. 전 국민의 52%를 차지하는 말레이인은 모두 이슬람교인이고 말레이시아에서 기독교는 로마카톨릭을 포함하여 300만명으로 전 인구 대비 9.2%의 비중을 갖고 있답니다. 기독교인은 동말레이시아, 시바, 사라왁에 밀집되어 있으며 서말레이시아 지역에는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수의 인원이 있다고 하네요. 말레이시아 선교는 말레이인을 대상으로 하기 보다는 미 전도 종족을 대상으로 전도를 집중하고 있으며 전략적 전도를 위해 현지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답니다.



특이한 것은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면 교육, 주택 등의 주거복지의 특혜가 전면적으로 취소 된답니다. 말레이인 가운데 600명의 개종자는 극심한 핍박과 고난 속에서 다민족문화지역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네요. 1987년에는 일부 개종자들을 대상으로 형사 체포되기도 하고 구금하는 사례까지 있어서 말레이지역 전도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말레이시아 선교는 말레이시아 연방국이 건립된 1965년 처음 시작되었답니다. 정치체제가 확립되지 않은 혼돈기에 한국교회가 복음의 발걸음을 내 딛었던 것이죠. 중부연회 정동교회에서 김성욱 목사님을 말레이시아 사라왁 선교사로 파송하였고 이슬람권에 복음 선교의 깃발을 꽂게 되었답니다. 그 후 보르네오 사라왁에서 중국계 감리교회와 협력하여 원주민인 이반족 선교에 착수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61년부터 감리교 여선교회에서는 ‘보르네오 사라왁 이반족(Iban)교회’를 지원하며 해외선교를 추진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당시는 말레이시아라는 국가가 형성되기 전인데 세계감리교 여선교회를 통해 ‘이반족’의 형편을 알게 되었고, 김활란 박사의 주선과 노력으로 감리교 여선교회 전국연합회에서 매월 해외 선교비를 후원하며 선교에 착수하였답니다. 

한국 감리교 여선교회에서는 원주민 이반족(Iban)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는 사역에 전념하였고, 전 감리교회가 참여하였답니다. 88올림픽에 이은 여행 자유화 조치를 계기로 1990년대 이후 장로교, 성결교 등 타 교단과 선교단체에서 말레이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한국교회들의 줄을 잇는 단기선교로 복음의 발걸음이 빨라졌다고 하네요. 

현재는 동‧서 말레이시아에 감리교 선교사 100여 가정이 있고, 초교파적으로는 200여 가정이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답니다. 기독교 불모지에 우리 감리교가 복음의 첫발을 디뎠던 것. 참 자랑스럽고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감리교의 사명이라는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우리 이천중앙감리교회가 몇 년전부터 이곳 사라왁지역의 선교를 돕고 있다는 것 역시 뿌듯한 자부심과 함께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정글용 4륜 구동차량에 탑승하여 먼지가 펄펄나는 비포장도로를 4시간이나 달려야 했습니다. 시부 사라왁 Bawie ULU 원주민 마을에 도착 후 모습은 흙구덩이에서 나온 것 같은 모습. 온 몸이 흙먼지로 뒤집어 썼네요. ㅎㅎㅎ



말로만 듣던 롱하우스입니다. 길이가 130m는 되는 것 같죠. 이 안에 여러 가구가 각자의 주거공간을 같고 생활하는 공동주택입니다.




선교사님의 주선으로 TR bakar 마을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휴식을 취한 후 대통밥과 넓은 잎으로 쌓인 밥으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원주민들의 식사는 우리의 식사방법과 거의 유사한 것 같았어요.






저녁 식사 후 마을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곳 예배절차에 맞춰 "쿠마우친따 예수 서라만야......" 나의 피난처 예수를 부르며 원을 그려 돌아가면서 인사를 나누며 마음 문을 열게 하고 우리 선교팀이 준비한 노래와 율동으로 특별찬양을 하였습니다. 마을 주민들도 함께 열창을 하면서 호응해 주니 더 은혜로웠던 찬양이 된 것 같습니다.




이어서 마을 주민들도 율동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은혜로운 찬양시간을 가졌네요. 기타를 연주하는 현지 전도사님의 사역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이어지는 시간은 이천중앙교회 김종필 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 선교사님의 통역으로 마을주민들이 아멘!! 아멘을 외치며 은혜가 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우리 장로 일행은 마을주민에게 안수기도를 하였지요. 간절한 복음의 소망을 담은 기도였습니다. 한명 한명을 잡고 눈물 흘리며 통성으로 기도할 때 성령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일행은 원주민에게 부채를 선물하고 팩마스크로 얼굴을 시원하게, 촉촉하게 맛사지해 드렸습니다. 아마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한약방을 운영하시는 장로님께서는 몸이 좋지 않은 주민들에게 침술로 의료봉사에 임했습니다. 너도나도 대침으로 치료 받고는 시원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답니다.




가정집에 걸려 있는 달력입니다. 우리는 가로로 만들어진 달력을 사용하는데 이곳은 달력이 세로로 만들어 졌네요. 낯설기도 하였지만 나름 신선한 맛도 있었답니다.



후추밭입니다. 시부지역의 농사를 보면 야자수와 후추농사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후추나무는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덩굴성식물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기둥을 세워 농사를 짓고 있네요. 후추열매를 수확하면 수매제도가 있어서 정부에서 수집상을 통해 수매를 한다고 합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 일행은 옆마을로 자리를 옮겨 마을예배를 드렸습니다.

Iuta&manggi 마을. 이 마을은 옆마을과 200m 쯤 인근에 있는 마을이죠.



역시 예배 절차에 맞춰 "쿠마우친따 예수 서라만야......" 나의 피난처 예수를 부르며 원을 그려 돌아가면서 인사를 나눈 후 우리 선교팀이 준비한 노래와 율동으로 특별찬양을 하였습니다.



이후 원주민 한명 한명에게 안수기도를 하였습니다. 마을의 안녕과 주님만 섬기는 마을되게 해 달라고......하나님이 임재하셔서 한 영혼 한 영혼을 만나 주시고 기적과 부흥을 이루어 달라고, 이곳 성도들을 주님의 도구로 사용해 달라고, 건강과 삶의 질이 향상되게 해 달라고 눈물 섞인 기도였습니다.




부채를 선물한 후 손톱에 메니큐어로 예쁜 손가락을 만들어 주고 침술로 의료봉사를 하였지요. 



다시 먼저 Bawie ulu 마을로 돌와온 우리는 가정을 방문하면서 축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심방을 받는 주민들은 헌금 대신 하얀쌀을 성미로 바치고 기도 받을 준비를 하였고 전도사님의 기타 연주에 맞춰  "쿠마우친따 예수 서라만야......" 나의 피난처 예수를 부르며 안수 기도를 하였습니다.





지난 장마에 하천 제방이 유실되었는데 옹벽을 쌓기 위한 복구비용이 없어 복구를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즉석에서 헌금을 모아 마을주민에게 하천 옹벽쌓기 비용을 전달하였습니다. 



말레이시아에 최초로 기독교가 들어오게 된 것은 1882년 루터교회 바젤선교부가 사라왁 지역 카다와크 원주민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선교를 한 것이고, 이후 1953년 미국 루터교회가 말레이시아 선교에 참여하였으며, 중국에서 철수한 OMA선교회가 말레이시아 선교에 동참하였답니다.


동말레이시아 선교는 수마르트에서 이전해 온 원주민 신자에 의해 30명을 전도하여 세례를 준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폭발적으로 부흥하였답니다. 1945년 이후에 타 부족에게도 전도하는 성과가 있었으며 동말레이시아에서 기독교는 20%를 차지하였으나 서말레이시아는 3%에 미치지 못하는 환경에 부딪쳤답니다. 



우리 일행은 첫번째 마을주민과 인사를 나눈 후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음 마을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정글용 4륜구동 차량에 탑승하여 펄펄 먼지 휘날리는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였지요. 무장괴한의 모습 아닌가요?




자동차 뒤로 휘몰아쳐 오는 먼지 속에서도 아름다운 밀림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였습니다. 




1시간 30분을 달려온 우리 일행은 학교 인근에 도착하였습니다. 학교까지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어서 선교 물품을 들고 좁은 출렁다리를 건너야만 했지요. 






우리 일행을 반기는 초등학교 학생들입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죠. 이 아이들은 이곳에서 합숙을 하는지 교실 안에 이불을 비롯한 침구도 있네요.




오후 1시40분부터 교실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담임목사님으로부터 하나님 말씀 선포가 있었지요.



이어서 김성남 장로님으로부터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어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구원팔찌만들기 실습을 진행하였습니다.





이어서 풍선만들기와 바람개비만들기 등 놀이기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보물찾기놀이와 함께 학교에 기념품을 전달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신이 났지요. 즐거워하는 아이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올바르게 성장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헤어짐이 아쉬어 교실 안에서 인사를 나누는 아이들과 작별을 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배를 이용해서 이동하여야 합니다. 역시 황토색 흙탕물입니다. 롱보트에 4~5명씩 나눠타고 이동합니다.  




우리를 안내하는 보트 종사자는 한 배에 두 명씩입니다. 모터가 달린 보트였는데 앞쪽에 있는 사람은 보트의 방향을 조정해 주고 갈길을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하고, 또 다른 한 명은 뒤에 있는 모터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군요.



수심이 깊으면 모터의 힘으로만 올라 갈 수 있는데 수심이 얕은지라 중간 중간 보트가 강바닥에 닿으면 조종하는 사람들이 내려서 배를 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보트 바닥이 낡아 물이 들어오는지라 물을 퍼내야 하기도 했고요. 여하튼 밀림속의 강가를 2시간10분 정도 배로 이동하여 우리의 목적지 3번째 원주민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역시 롱하우스. 이곳 시부지역의 원주민마을 주민들은 모두 롱하우스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네요.



PATO 마을 원주민들과 인사를 나눈 후 저녁식사가 있었고, PATO 마을주민들과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곳 시부지역 예배절차에 맞춰 "쿠마우친따 예수 서라만야......" 나의 피난처 예수를 부르며 원을 돌아가면서 인사를 나누고, 우리 선교팀이 준비한 노래와 율동으로 특별찬양을 하였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은혜로운 하나님 말씀을 전하였지요.



마을주민을 위한 안수기도와 함께 부채 나눠주기, 이고수 장로님의 침술봉사가 이어졌습니다.




다움날 아침 우리 일행은 서둘러 다음 마을을 향해 발길을 옮겨야 했습니다. 배를 타러 강가로 나오니 강 건너에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 졌네요. 멧돼지 일가족이 물을 먹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주민들이 먹이를 주기도 해서 먹이를 먹으로 내려 오기도 한다는 군요.




어제 강을 거슬러 올라올 때는 정말 힘들었지요. 우리 일행들도 배를 밀기도 했고, 물을 퍼내는 등 힘겨운 일정이었지요. 내려가는 롱보트는 올라올 때보다 쉽게 내려가고 있습니다.




약 1시간10분 정도 롱보트를 이용하여 도착한 곳. TERINTING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롱하우스를 신축 중에 있네요.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 가정당 80~100여평이 되는 규모가 제법 큰 롱하우스였습니다. 시설도 제대로 갖춰진 이상적인 현대식 롱하우스. 정말 훌륭한 공동주택입니다. 입주하게 되면 주민들이 무척이나 기뻐하겠지요.



한가정 한가정을 순회하며 "쿠마우친따 예수 서라만야......" 나의 피난처 예수를 부르며 성공적 건축과 성령의 위로하심을 빌어 드렸답니다.




마을 주민들이 현재 살고 있는 롱하우스로 우리 일행을 안내 하더군요. 목조로 건축된 낡은 롱하우스였죠. 2층에서 살림을 합니다.




마을주민이 준비해 준 간식을 먹고 우리 일행은 롱보트를 타고 다시 1시간여 이동하여 학교 인근의 선착장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시 정글용 차량에 몸을 싣고 먼지나는 도로를 1시간여 달려 넓은 도로에 대기하던 미니버스와 차량으로 15시30분 시부선교센터에 도착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도 4시간이나 소요 되었네요.

선교사님의 말씀. 24년을 이런 식으로 원주민 마을을 찾아다니며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는 군요. 어떻게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일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선교센터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간단하게 먼지를 씻은 후 시부 시내로 나갔지요. 시부시내에 있는 화교들의 감리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시부연회라고 합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중국인들이 말레이 반도에 이주하기 시작하여 인도네시아와 말레이 반도에 화교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답니다.




114년된 감리교회입니다. 1995년에 증축하였고, 2008년에 확장 공사를 하였다고 하네요. 교회유치원도 101년이나 되었으며, 교회학교 학생은 400명에 이르고, 성인은 2,200명이 출석하여 3부예배로 나눠 드린답니다. 이곳 시부지역 교사들이 선교사님과 함께 금년 9월에 우리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여기 자료에 의하면 말레이시아에서 기독교선교는 영국 런던선교사가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1814년 런던선교회 장로 선교사 월리엄 밀른은 미션스쿨을 통하여 청년교육과 문서선교에 주력하였으며, 1841년 장로교회 선교사 벤자민 키스베리는 싱가포르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말레이인 7명과 중국인 1명, 원주민 2명을 선교하여 2년 후 60명의 교인으로 성장한 결과를 남겼다는 군요. 



말레이시아에서 선교의 위험성은 외국인 선교사 뿐만 아니라 중국계와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도 말레이인에게 전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동말레이시아에서의 선교에 치중하게 되고, 서말레이시아 선교는 순교와 연결되는 위험성으로 인하여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학교 운영이 특색있네요. 교회학교는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 운영한다는 군요. 왜냐고요? 목사는 자주 이동을 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운영이 어렵답니다. 엄마가 자주 바뀌면 안 좋듯 선생님이 자주 바뀌면 안좋다는 군요.



우리 일행은 아주 맛있는 저녁식사에 초대 받았습니다. 중국계 화교인데 우리 이천중앙교회에 몇 번 방문하였답니다. 그 때마다 식사 대접을 받았는데 오늘 그 빛을 갚는다나요. 감사합니다~~



늦은 밤 시부선교센터로 돌아온 일행은 예배를 드렸습니다. 선교사님의 감동적 선교내역을 담은 말씀 선포와 담임목사님의 말씀 선포가 있었지요.



우리는 합심해 함께 통성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적 음성을 듣는 예민함을 주옵소서"



담임목사님께서 선교사님에게 이반족 선교에 사용할 선교비를 드렸습니다.



이번 말레이시아 단기선교활동에 대한 각자의 소감과 다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곳 말레이시아 뿐 아니라 말라위를 비롯한 아프리카 등지에 선교가 필요하다는 필요성은 말할 나위 없겠고 지속적인 선교활동과 체계적인 선교를 위해 우리 이천중앙교회가 필요한 지역에 선교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다음 날 시부공항을 떠나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였습니다. 여유 시간을 이용하여 말레이시아의 랜드마크 페트로나스트윈타워 (쌍둥이빌딩)을 관광하였지요. 1998년에 건축된 말레이시아 쌍둥이빌딩은 452m입니다.






쌍둥이빌딩의 야경이죠. 아름다운 시내를 관망하기에 참 좋았습니다.



말레이시아 시부지역 사라왁의 원주민 선교활동을 하시는 신정채 선교사님의 선교활동을 응원합니다. 2004년부터 이반족 선교활동을 위해 비포장 길을 달리고, 강을 거슬러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선교사님. 2년 사이에 20개 마을이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962명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하네요. 현재 이반족 4,300명의 성도가 있답니다. 이 사역을 감당하시는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마지막 날 일정은 서울행 항공편 시간을 맞추기 위해 1시간 정도 여유시간을 이용해 말레이시아 신도시라는 위성도시 시내관광을 하였습니다.







말레이시아 선교는 한인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슬람의 성지.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도 복음을 전하여야겠고, 미전도 종족들을 대상으로 곳곳에 산재해 있는 원주민들에게 실제적 전도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슬람의 확장을 저지하고 기독교의 핵심 역량을 키워 나가는 중요한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항복하고 순종하는 부흥의 씨앗되는 우리 이천중앙교회 자랑스런 장로의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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