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농촌체험관광 스토리 열다섯. 믿음농원 박인원]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경기 이천시 율면 본죽리(밤골)이라고 합니다. 밤골은 옛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밤으로 인해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이가 되었다는 고부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지요. 저는 이곳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군 생활 3년을 제외하면 60평생을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고향지킴이’ ‘포도쟁이 농사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포도 농사를 지은지는 어느덧 29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로래’라는 품종을 심었어요. 그 다음은 ‘거봉’을, 지금은 우리나라 식용 포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캠벨’ 포도를 친환경 무농약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이 포도를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피와 땀을 다해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친환경 유기재배농법을 사용하여 계속해서 품질 좋고 맛있는 우수농산물을 생산하려고 합니다. ‘포도’라 하면 제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2004년에는 경기도에서 실시하는 과일품평회에서 포도, 켐벨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한, 포도에 자신이 있는 ‘포도쟁이’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는 말없이 옆에서 40여 년 동안 함께 한 아내의 고단함이 있었습니다. 참 가엾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농사일도 모르던 사람이 가난한 농부한테 시집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심지어 증조부모님까지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 와중에 2살 터울의 아들 셋을 낳아 기르면서 산후 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 했습니다. 힘든 몸을 이끌고 들과 집을 뛰어 다니며 남보다 배는 열심히 농사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담배농사, 고추농사, 참깨 농사 등 참 많은 농사일을 했었지요.
누에도 길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누에치기를 할 적에는 징그럽다고 만지지도 못해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누에를 옮겼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 누에를 보지 않고서도 양손으로 누에를 잡아 척척 옮길 정도의 기술자가 되었답니다. 누에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던 여린 심성은 아내의 가슴 깊숙이 들어가 버렸나봅니다. 여린 여인이 강한 아내가 되어가고 있었으니, 제가 아내의 마음을 점점 거칠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90년대에 처음으로 포도밭 비닐 피복을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비닐하우스가 생긴다는 기쁨에 아내는 쉴 새 없이 일을 거들었습니다. 비닐하우스 비닐 양 열에 끈을 펴서 넣는다고 쪼그리고 앉아 하루종일 다리미질을 해서 비닐 끈을 피는 작업을 했습니다. 하도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아서 종아리에 피멍과 물집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아내의 아픔을 다 알면서도 형편 때문에 그 일을 멈추게 할 수 없었으니,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아려 옵니다.
트랙터를 운전하다가 하천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도 났었습니다. 그래도 아프단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몸이 움직여지기 무섭게 다시 밭으로 달려 나간 아내입니다. 저는 이 사람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밭을 향하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습니다.
1983에는 갑작스레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집안 살림도 아내의 몫이 되었습니다.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껏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지나온 일들을 적으려니 아내의 일생이 안타깝고 애처로워 집니다. 이제 저와 아내는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몸 이곳 저곳이 저리고 쑤십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희는 부지런히 오늘도 농사를 짓습니다. 이것이 저의 일이기 때문이지요. 한 해 두 해 세월이 흘러가며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변함없이 묵묵히 농사를 짓는 건 저희 내외 뿐인가 봅니다.
요즘 부쩍 더 자주 그리고 많이 아파하는 아내를 바라 볼 때면 가슴이 먹먹하고 애처로워 집니다. 이 모든 것이 부족한 저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농사를 짓고 아내와 더불어 살아가는 게 행복합니다. 제가 욕심이 많은 걸까요? 저는 영락없는 농사꾼인가 봅니다. 제 아내에게도 물어 보아야겠습니다. 나와 함께 이렇게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게 행복한지. 무어라 대답할까요? 제가 욕심쟁이인지 아무래도 제 아내도 “나도 그래!”라고 답해 줄 것만 같습니다. 저는요, 앞으로도 열심히 농사를 지을 겁니다. 제 아내 곁에서, 제 아내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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