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 가면 근대역사박물관이 있습니다. 그곳에 전시된 일제시대의 군산 시가지 모습입니다. 사진으로 보면 무척 큰 도시였음을 알 수 있지요. 근대역사박물관에는 일제시대의 아픈 상처가 고스란히 배여 있는 우리네 역사를 잘 표현해 놓았습니다. 군산은 인천과 부산, 목포와 함께 우리나라 최대의 부두 역할을 해 왔던 곳이죠.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식량의 수탈을 자행했던 현장이기도 하답니다.
근대역사박물관 안에 고무신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고무신방이 있습니다. 마치 내가 어렸을 적 신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답니다.
경성고무에 대해 알아봅니다. 1932년 조선인 이만수에 의해 경성고무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경성고무는 조선인들의 자본으로 설립된 유일한 공장이었으며 해방이후 만월표 고무신을 생산하였는데 그 고무신의 인기는 대단하였다고 하네요.
고무신은 근대문명의 산물로 1920년대 초에 등장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전통적 갖신과 일본의 호모화(밑창은 고무이고 그 외는 가죽이나 천)를 한국의 풍토와 생산활동에 적합하도록 토착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모양이 예쁘고, 질기고, 물이 새지 않아서 고무신의 등장은 신발의 혁명이라고 할 정도로 생활을 변화시켰지요. 특히 검정 고무신은 전 국민이 애용하였던 것이랍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고무신을 신고 뛰다보면 발에 땀이 나서 미끄러웠지요. 흙에 발을 비벼서 다시 신고 뛰던 기억이 새롭군요. 검정고무신 말고 누렁고무신을 신었던 적도 있네요. 고무신을 손에 들고 뛰어가던 기억도 있고요.
하얀고무신은 때를 잘 타서 쑤세미로 빡빡 문질러 닦아 신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름엔 게다라고 하는 나무로 된 신발을 신기도 했었지요. 게다를 신고 걸을 때는 달가닥 달가닥 땅에 게다가 끌리는 소리가 유난했지요.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코가 뾰족한 고무신을 신고 다니셨지요. 버선이라는 지금의 양말 대용으로 신었던 것인데 그 버선을 신고 하얀고무신을 신었던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군산의 경성고무는 해방 후 전주와 목포에 분공장을 두고 1,8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연 8백만 켤레를 생산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였으며 이 당시 경성고무는 최고의 번영기였는데 1970년 이후 두 차례의 화재가 발생해 공장이 전소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으며 쇠퇴기에 들어 섰다고 합니다. 이후 경성고무는 선화로 명칭을 바꾸고 중국에 진출하여 현재도 경성고무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군요.
여기에 전시되어 있는 신발은 중국 선화의 소재준 사장이 1970년대 군산 경성고무에서 제작하던 신발들을 재현 제작하여 보내준 신발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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