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관광

영양 두들마을의 두가지 테마

아침햇쌀 2012. 12. 5. 09:13

이천에서 자가용으로 8시 20분에 출발하여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중앙고속도로로 접어 들어 안동IC에서 국도를 타고 영양 두들마을에 도착하여 보니 12시 20분. 4시간이 소요되어 찾아온 머나먼 길.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두들마을

 

이곳 두들마을은 조선시대 광제원이 있던 곳이랍니다.

두들이란 이름은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지어진 것이고 두들에 위치한 원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원두들, 원리리라 한답니다.

 

문학의 고장, 그리고 전통이 살아 숨쉬는 유서 깊은 언덕 위의 마을. 두들마을은 1640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시작하고 이곳으로 들어와 개척한 이후 이곳에서는 석계의 아들 중 넷째 숭일이 계속 선업을 이루었는데 방후손들이 더해져 재령이씨 집성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두들마을은 최초의 여성 음식조리서의 저자이며 자녀 교육에 대한 전범과 부덕이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정부인 안동장씨 장계향 선생의 음식을 계승한 음식디미방. 그리고 남편인 석계 이시명을 중심으로 한 재령 이씨의 집성촌 고택과 현존하는 작가 이문열 선생을 테마로 마을 정비사업이 한창 진행 중에 있네요.

 

 

음식디미방에서 바라 본 고택들. 이제 저곳을 둘러 보러 떠납니다.

이 마을은 2000년도에 전통문화마을로 지정되어 민속자료 91호인 석계고택을 비롯한 문화재와 정부인 장계향 선생의 유적비 등이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라고 합니다.

 

 

장계향  선생은 홀아비 이시명에게 시집 온 후 병자호란때 이 마을에 들어와 숨어 살자고 하여 자리 잡은 것이 재령 이씨의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네요

 

 

장계향 선생이 생전에 사시다가 타계한 석계고택입니다.

석계고택은 일자형의 사랑채와 안채를 흙담으로 막아 호실감을 메우고 뜰집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하였습니다.

장계향 선생은 안방 물림에 의해 왼쪽의 안방을 며느리에게 넘겨주고 상방으로 옮겨 기거하시다가 오른쪽 상방에서 타계하셨다고 하네요.

 

 

이문열 선생의 생가입니다. 이문열 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 세살 어린 나이에 떠돌이 생활 하면서 안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들어갔다 중퇴하였으며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등단하게 되었고 여러 문학활동을 하던 중 80년대에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한 작가로 꼽히고 있는 분이죠.

 

그해겨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금시조,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등 많은 작품 속에 인물들의 삶의 열정이 펼쳐지는 곳이 이곳 두들마을이라고 하네요.

 

 

사대부들의 예학사상과 엄격함 그리고 도덕성을 느낄 수 있는 고택이라고 하는 유우당입니다.

순조 33년에 이상도 공이 다른 곳에 있던 집을 구한말 유림대표로 파리장서 사건에 가담한 공의 후손 이돈호가 이곳으로 이건하였다고 합니다.

 

 

이 마을 앞에 강이 흐르는데 이 강에 자라가 많았다고 합니다. 냇가에서 자라 모양의 주춧돌을 가져다가 세운 저택으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옛 고택들은 모두 조립식 건물이었는데 주춧돌에 딱 맞게 조립하여 지진에도 무탈하도록 지혜롭게 건축된 건물들이죠.

 

 

사당입니다. 사당은 조상을 섬기는 역할도 있었지만 자녀들에게 효를 심어주는 교육의 현장이었다고 합니다.

부모님들이 사당에서 지극 정성으로 조상을 섬기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보고 자란 자손들이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신 분에게도 저렇게 정성을 다해 섬기는데 우리는 살아계신 부모님에게 무엇을 해 드렸는가?라고 반성하면서 자기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게 되었다는 효의 산실 역활을 톡톡히 하였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깨달아야 할 대목이 아닐까요?

 

 

건물 옆에 나무판으로 가려진 것은 무었일까요?

비바람이 치면 나무로 된 건물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가림으로 설치했다고 합니다.

 

 

장계향 선생의 유물전시관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봅니다.

 

 

퇴계 이황 선생의 학파를 계승한 퇴계학파의 계보입니다.

퇴계 이황으로부터 학동 김성일, 장계향 선생의 부친 경당 장흥효, 장계향 선생의 남편인 석계 이시명으로 이어지는 계보로 아버지의 정통 학파를 이어 왔네요.

 

 

유물전시관에 있는 장계향 선생의 흉상입니다. 장계향 선생은 여중군자라는 호칭을 받았는데 여성 중에 군자라는 뜻이라 합니다.

결혼 당시는 내외법이 더욱 강화되는 시대였지만 남편 석계 이시명과 함께 부부는 서로 손님처럼, 더 나아가 서로 동지로서 공경하면서 때를 맞추는 중용의 모범을 보이는 여성 중의 군자로서 살아갔다고 하네요.

 

특히 그 재주를 숨긴채 한 가정의 평범하게 보이는 딸이자 평범하게 보이는 가정 주부이면서도 그 평범하게 보이는 힘으로 시가와 본가 두 집안을 모두 당시 사회공동체의 기둥이 되는 가문으로 일으켜 세우고 더하여 열 자녀를 제대로 키워냈다고 합니다.

 

 

장계향 선생이 만들었던 9첩 반상이네요.

 

 

이 두들마을은 술 빚는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손님들이 오시면 많은 종류의 술로 접대하느라 늘 술을 빚어야 했다네요.

 

 

이문열 선생의 책이 전시되어 있다는 두들 북카페.

이 작은 마을에 운치있고 조용하게 들어선 북카페는 차도 마실 수 있게 꾸며졌다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야 했답니다.

 

 

권역사업으로 마을에 공사가 한창입니다.

이문열 선생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곳곳에 만들어 놓고 있네요.

 

 

장계향 선생의 음식디미방과 고택. 이문열 선생의 테마가 있는 두들마을 다시 찾아 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