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말씀

성령의 사람, 요한 웨슬리의 일생

아침햇쌀 2012. 5. 27. 09:52

요한 웨슬리 목사는 1738년 5월 24일 밤 8시 45분경에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9시 15분경에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웨슬리 회심’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세 가지 의미를 줍니다.

 

첫째는, 새로운 인생의 탄생입니다. 웨슬리는 가문이 주는 신앙적 유산과 옥스퍼드 신학에서의 열심에서도 영적 확신을 얻지 못해 성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내적인 갈등과 공허에 시달렸지만 회심을 통해서 그는 성령의 사람, 구원의 사람으로,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새로운 교회의 탄생입니다. 18세기 영국교회는 자유주의, 계몽주의, 낭만주의로 죽어가고 있었으며, 100년만 지나면 기독교는 끝날 것이라는 예언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영국교회를 존 웨슬리, 찰스 웨슬리, 조지 휫필드가 새로운 교회로 탄생시켰습니다.

 

셋째는, 새로운 사회의 탄생입니다. 당시 영국은 부패가 극에 달했으며, 처음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비리와 착취가 난무하여 절대 빈곤자들과 노동자들의 수명이 30세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웨슬리의 회심으로 영국사회가 변하여 복음의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회심 후 웨슬리는 처음으로 옥스퍼드에 가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불타는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벽을 넘어 복음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찾아가는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영국교회로부터 많은 방해와 비난을 받았고, 폭도들의 습격과 돌팔매질을 당했지만 전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죠지 휫필드의 옥외설교 요청을 받아들여 거리집회를 시작했습니다. 1739년 4월 1일 브리스톨에서 수백 명이 모인 가운데 산상수훈을 설교했습니다. 그의 옥외 설교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 죄인들이 회개하고, 폭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자복하는 등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는 수천, 수만의 광부와 노동자들과 농부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감리교회는 낮은 자의 교회, 민중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 라는 말로 야외, 탄광, 빈민굴, 빈들의 친구가 되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영국 전역을 말 타고 순회 전도하였는데, 50여 년간 순회한 거리가 25만 마일로 지구를 10바퀴를 돈 거리이며, 설교한 숫자는 4만 번 이상으로 이것은 1년에 800번 설교한 것이며, 매일 평균 2번 이상 설교한 셈입니다.

 

그리고 1791년 3월 1일 화요일, 죽음 하루 전날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1791년 3월2일 수요일 아침 10시경, 88세의 일기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셨습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일생은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성령의 불을 전하시는 삶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