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야기

쌀과 한민족

아침햇쌀 2009. 7. 13. 21:07

   쌀과 한민족  

  쌀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삶과 환경을 지켜주었고 문화적 전통을 유지할 수 있게 우리에게 정착된 삶의 터전을 이루게 하였다. 어째서 쌀이 우리에게 그렇게 소중한 존재인가 다시 한번 되새겨 볼일이다.

  최근 1만 3천년도 더 된 토탄층에서 고대 벼 껍질이 발견되어 어쩌면 재배벼의 기원이나 벼 전래와 관련된 역사를 다시 써야만 할지 모르는 엄청난 사실 앞에 고민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 한반도의 벼 역사는 엄청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르나 쌀이 우리 삶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벼를 한반도에 처음 심은 사람은 현재 우리 민족과 다른 원시 종족이었거나 아직도 우리 피속에 그 일부가 흐르고 있는 한 뿌리를 이루고 있는 고대 종족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면 우리 재배벼는 어떠한 경로를 거쳐 한반도에 전래된 것일까?

  최근 중국이나 일본 학자들의 여러 가지 과학적 조사 연구와 분석을 통하여 인도의 아삼에서 미얀마 및 라오스의 북부와 중국의 윈난(雲南)성 지역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을 벼의 기원지로 추정하는 주장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 아삼․위난지역은 지형적으로 동남아시아 도작지대의 많은 강의 기원지가 되고 또한 민족이나 문화의 이동에서 교차지점에 해당되는 중심 요지로서의 특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재배벼가 태어난 고향으로 보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 것 같다.

  아삼․윈난지역으로부터 처음 야생벼로부터 자연적 돌연변이체가 생겨나 재배벼의 조상이 되면서 점차 양쯔강을 따라 중국의 화중으로 전파된 벼 중에서 한반도로 전래되어 온 것으로 생각되며 전래된 경로에는 여러 가지 추측설이 있다.

  중국의 문헌 기록으로 벼 재배에 대하여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약 4천년전 정도까지만 연고를 찾을 수 밖에 없다. 탄화미 발굴로 가장 오래된 것은 쯔쟝성(浙江省) 유야오(余姚)의 허무뚜(河姆渡) 유적의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6~7천년전 경으로 거술러 올라간다. 이곳에 발굴된 탄화미는 형태적으로 보아 우리가 예부터 주로 심어오던 자포니카 벼에 인디카로 생각되는 것이 섞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된 것은 지난 1991년 6월에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가와지 유적의 이탄층에서 발굴된 것으로 거의 원형에 가까운 벼 껍질이 여러개 발견되었는데 이탄토의 탄소 연대 측정으로 미루어 보아 4,300~4,700년전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로 벼의 전래가 가장 빨랐던 경로는 윈난지역→양쯔강→화이허→산둥반도→한반도 한강 하류로 이어지는 황해 횡단 루트일 것으로 추측된다. 또 다른 경로는 양쯔강 하류→화이허→산둥반도→황해도 장산곶으로 이어지는 것과 양쯔강 하류→산둥반도→랴오둥 반도→한반도 북서해안 평야로 이어지는 경로와 황하하류→화북발해만 연안→랴오둥 반도→한반도 북서해안 평야로 이어지는 경로 등을 추정할 수 있는데 이는 그 이후가 아닌가 추측된다. 일본으로 벼가 처음으로 전파된 것은 가장 오래된 발굴 유적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전 쯤이 되어 아마도 한반도 남부에서 규슈 북서부지역으로 벼농사를 하는 민족의 이동과 함께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아주 옛날에는 한반도에서 벼가 주작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벼가 전래된 후 점차 재배면적이 늘어나면서 매우 소중한 작물로 가꾸어 왔고 그 생산물은 신이나 조상을 숭배하는 제사에 바치는 신성한 제물로 쓰여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은 지금도 우리가 특히 상례와 재례시 쌀로 빚은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정성스럽게 조상을 모시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쌀은 다른 곡식과 달리 그 맛이 담백하고 영양적으로 잘 소화 흡수되어 에너지로 이용되는 효율이 가장 높다. 사람이 병이 들었거나 기력을 잃었을 때 어떤 곡식보다 원기를 빨리 회복시켜 주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쌀이 소화이용율이 높은 고급 전분 식품이기도 하지만 단백질의 소화 이용율도 어는 곡류보다 가장 높다. 이러한 사실은 비록 과학적인 분석이나 실험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아마도 고대인들은 실제 경험을 통하여 쌀의 높은 효용성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 한반도에 내리는 비는 주로 여름 장마철에 집중적으로 내리기 때문에 물이 고이는 저습지대에는 이 기간중에 벼 이외에는 제대로 살아남을 작물이 거의 없다. 따라서 처음 씨앗을 뿌릴 때에는 마른 논 상태로 시작하지만 일단 벼가 싹이 터오른 다음에는 빗물에 잠긴 채로 잘 자라기때문에 낮은 지대에는 자연스럽게 벼 재배가 정착되게 되었으며 이는 주로 하천이 범람하는 지대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벼를 재배하는 논은 여러가지 공익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선 비가 집중적으로 많이 내리는 장마철에는 논이 거대한 저수지와 같은 홍수조절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빗물에 씻겨 내려가 버릴지도 모를 흙의 유실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벼를 재배함으로써 벼가 공기중에 탄산가스를 흡수하여 광합성 작용에 의하여 크게 자라고 열매를 맺어서 우리가 먹을 양식을 제공해 줌과 동시에 산소를 내뿜어 우리가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는 맑은 공기를 만들어 준다. 벼는 볏짚과 생산한 벼알 무게 만큼이나 공기 중 탄산가스를 흡수하는 대신 산소를 내뿜어 주었으며 가축이나 사람이 그 수확물을 소화 흡수하여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고 내뿜는 탄산가스나 배설물로 다시 본래 자연대로 되돌아감으로써 항상 흙과 대기 중에는 지속적으로 그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여름에 벼 식물체나 논물에서 증산되는 수분을 통하여 잠열을 빼앗아 감으로써 거대한 자연적 냉각기능을 발휘하게 되며 그 속에 많은 생물들의 연쇄적 생존 사슬의 고리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논에 고여 있는 물은 서서히 땅속 깊이 스며들면서 지하수를 함양하는 역할을 하게된다.

  이와 같이 벼를 재배함으로써 얻어지는 여러가지 공익적 기능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환산해보면 쌀과 볏짚 등의 수확물을 통해서 얻어지는 이익보다 3~4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이 우리의 주식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자연환경과 우리 식생활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벼 농사를 통한 안정된 농경사회와 조상 숭배의 아름다운 전통적 농경문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한 것은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된다.

  쌀은 영양적 가치나 건강기능성 면에서 고급 식품이기도 하지만 밥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오랜 전통적 식습관은 우리가 반찬을 통하여 여러가지 식품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게 하고 특히 된장과 김치 등 식물성 식품의 섭취량을 높게 유지해줌으로써 우리 민족의 도덕성과 건강을 지켜주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최근 젊은 사람들이 서구적인 식습관에 크게 물들여 짐에 따라 밥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전통적 식습관이 점차 무너지고 있고 이에 따라 쌀 소비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실로 염려됨이 매우 크다. 앞으로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방향으로 조리의 형태를 바꿀지라도 쌀을 중심으로 한 식단의 형태는 되도록 유지될 수 있게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쌀을 올바로 지켜나가는 것이 곧 우리의 건강한 삶과 환경과 전통문화를 지속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자료: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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