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까지 '보릿고개'는 계속됐다. '보릿고개'란 늦봄 보리가 생산되기 전 이미 식량이 바닥이 나 식량을 구하기 어려웠던 기간이다. 쌀이 턱없이 모자랐다. 달러부족으로 쌀을 수입할 수도 없었다.
▲ /경인일보 DB
정부가 나서 분식을 장려하고, 혼식을 권장 하면서 '쌀을 자급하자'는 절체절명의 목표가 됐다. 수원 농촌진흥청이 총대를 멨다. 벼품종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생산성이 형편없었다.
1971년 쌀 박사들의 노력으로 열대종 인디카와 온대종 자포니카를 교배로 마침내 통일벼, 원종품명 '수원213-1'이 선을 보였다. '정부미'가 탄생한 것이다. 통일벼는 병해충에 강했고, 생산성이 40% 높았지만 맛이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보릿고개는 사라졌다.
매년 품종개량이 이어졌다. 신품종이 개발되면 농진청은 시험재배를 했다. 사진은 1974년 5월 9일 있었던 통일벼 '봉광'의 모내기 모습이다. 1991년부터 통일벼가 쌀 생산량 과잉의 주범으로 취급받아 정부는 이 볍씨의 공급을 중단했다. 격세지감이다.
[출처:경인일보 2014.4.15.12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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