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대만 농촌을 돌아보고

아침햇쌀 2009. 8. 15. 22:04

[농업인의 국제적 감각 기르는 기회]

농산물 수입개방에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경기도농촌진흥원에서 외국의 경영기술과 유통에 대한 해외연수를 실시해 농업생산성 향상과 영농정착의욕을 심어주기 위해 1991년 8월 11일부터 8월 17일까지 4-H회원 17명과 관련공무원 3명 등 20명이 6박7일의 일정으로 대만을 돌아보게 되었다.

연수단 일행은 8월 11일 18시 40분 대한항공 635편에 탑승하여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했는데 기내에서 내려다본 우리나라의 국토는 잘 정리된 듯 하면서 푸른산 사이로 흐르는 냇물과 강줄기가 뭉게구름 사이로 들어낼 때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2시간 후 어둠이 짙게 깔린 타이페이 중정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현지 안내원의 안내를 받으며 약 40분간 관광버스를 타고 타이페이 시내의 기린호텔에 도착. 여장을 풀고 외국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대만의 국토는 36,000㎢로 이중 33%가 임야, 38%가 산지, 29%가 평야지로 중요 농업지대를 이루고 있고 인구는 2천만 명으로 그중 18%인 367만 명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호당 경지면적은 1.2ha로 협소한 편이다. 대만은 아열대 기후에 속해 고온다습하여 모든 농작물을 연중 생산하고 있어 농업생산성은 높은 편이나 6~8월에 발생되는 태풍과 잦은 비로 인해 병충해 발생이 많아 이의 방제에 대비해 채소재배는 비닐하우스를 이용해 비가림 재배를 하고 있다.

 

[건강한 채소생산 공급주력]

8월 12일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연수 일정이 시작되었다. 연수단 일행은 대북시 및 삼중시 농회와 채소재배 농가를 방문했다. 이곳 농회(우리나라의 농협)는 산지형 농회와 도시형 농회로 구분하여 운영된다고 한다. 농민조직으로 농회를 통해 그들의 자주성, 근면성, 독립성을 엿볼 수 있었으며 농회는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농민의 생산수익을 높이고 생활향상을 꾀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도시형 농회 소속 농민들은 주로 가족단위로 채소를 재배하고 있는데 산지에서 깨끗하게 세척한 다음 선별 포장해 냉장창고에 보관하면 농회에서 계약된 슈퍼마켓 또는 농산물 도매시장으로 운송된다. 건강한 채소 생산이라는 목표아래 위생국 검사관의 야채신선도 측정을 받고 시판되도록 한 제도는 이곳에서도 농약 안전사용을 강조하고 있으며 농가에서도 농약기준치 사용 등 정부시책에 보조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농회에서는 최근 농가소득 향상과 도시민의 휴식 공간 제공을 위해 관광농원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8월 13일 새벽 3시 30분 전화벨 소리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타이페이 농산물 도매시장으로 향했다. 농회를 통해 공동출하가 이루어지고 경매 체계율은 100%이며 모든 농산물은 무게에 의한 가격표시제로 판매되는 것과 산지농산물 입하 후 가격이 생산비에 못 미치는 경우 정부에서 보조해 주는 제도가 있다는 설명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쌀보다 채소 과일권장]

중정고속도로(연장 360Km) 일명 남북고속도로라 일컽는 대만 유일의 고속도로이다. 평균시속 100Km의 속도로 2시간 20분가량 걸려 대중시에 소재된 대만성 농회에 도착했다. 1900년도에 대만성농회(농협중앙회)가 설립된 이래 산하에 290개의 농회에 78만 명의 회원으로 조직되어 있다. 농업재해 보상과 농민보험사업 등 농회에서 농민을 위한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었으며 모든 농산물의 가격안정과 국민의 영양공급을 위해 현재 10만여 명의 18세에서 35세 된 농업창업자를 육성하고 있다. 신농민의 선발은 본인이 창업신청을 하면 제반여건을 심사한 후 1인당 연리 4.5%로 10년 분할상환 조건에서 1억 5천만 원 정도의 창업자금을 융자 지원해주며 선발전에 3년 동안의 전문교육을 이수해야 자격이 주워 지는 제도를 갖고 있다.

대만 어느 도로에서나 우리는 놀랍게도 고급승용차와 오토바이 물결을 대하게 된다. 오토바이 천국의 나라, 자동차와 거리를 배열하여 움직이는 오토바이 행렬은 우리와 대조적으로 간편하고 실용적인 교통수단인 것이다. 처음 느낀 것은 거리가 너무 무질서 했는데 그 혼잡한 가운데서도 자동차의 경적 한번 들어볼 수 없었으며 교통순경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7일간의 여행 중 교통사고 현장이 한건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무질서는 곧 국민 속에 잘 정돈된 질서로 보여 졌다. “행인이 도로를 건너려고 하면 여러 운전기사들은 행인을 먼저 건너게 해주시오” 도로 표지판에 있는 글을 옮긴 것이다. 서로 양보하고 서로 미안하다고 인사하는 그들의 국민성은 양보가 미덕이라는 말을 실증하고 있다. 이 얼마나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시민 정신인가.

공자님 사당을 여러 사람들이 참배하고 있었으며 대중시의 유일한 공원 옆에 자리 잡은 경화호텔에 여장을 풀고 대중공원의 잔잔한 호수에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며 자유중국의 풍물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무질서 속의 질서의식]

8월 14일 뱀장어 양식 농가를 방문했다. 뱀장어는 전량 일본과 계약수출을 하는데 치어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 했지만 우리가 방문한 농가의 양식장은 2.6ha이었고, 모든 농장의 규모가 기업화, 단지화 되어 있었다.

대만인들의 삼림욕장이라고 하는 대만대학 산림시험장에 위치한 계두, 해발 1,500m 이상에서 재배되는 고산차가 유명하다고 한다. 좁은 국토를 활용하기 위해 경사가 가파른 고산지대를 개간하여 특산품인 차를 재배하는 개척정신을 우리 주변의 노는 땅을 생각할 때 크게 배워야 할 점이다.

8월 15일 1970년도에 설립되었다는 대만양돈과학연구소를 방문했다. 중국 사람의 돼지고기 소비량은 1인당 년35Kg, 양돈은 기업형태의 경영으로 3원 교잡종의 품종개량과 사육방법 개선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고 매년 1천 5백 만두 정도의 돼지를 생산해 1/4은 수출이 되며 총 농업생산의 25%에 생산 가치를 갖고 있어 쌀보다 큰 기대를 갖고 있으며 사료는 98%가 외국에서 수입하는데 값이 저렴한 외국산 곡물을 수입해 사료로 활용하고 있다. 양돈장의 분뇨를 위생적으로 처리해 환경오염을 줄이는 것이 커다란 과제로 액체와 고체를 분리한 다음 미생물을 이용한 생물학적 방법에 의해 분뇨를 완전 분해하여 정화시키는 정화시설을 보급하고 있는데 1천 마리 기준으로 시설할 경우 5천만 원의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이 큰 장애 요인이라 한다.

대만의 비료생산 사업은 비료생산뿐 아니라 비료연구센터에서 농가의 토양시료를 채취 정밀 분석해 심을 작물에 대한 시비 추천서를 처방해 주고 모든 물가가 올라도 비료 값은 오르지 않고 비료생산업은 돈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농민에 대한 정부의 서비스 산업이라고 대만 비료센터의 한 관계자는 설명한다.

타이페이로 돌아와 5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도교사원으로서 가장 큰 용산사와 야시장을 견학하였다. 자유중국 2천만 명의 인구 중 80%는 대만인, 18.5%는 대륙인, 1.5%의 30만 명은 고산족으로 분포돼 있는데 연수단 일행은 8월 16일 고산족이 있는 우라이 민속촌을 관람 후 4건회(4-H회) 방문을 위해 4건회 이사장이 근무하는 국립대만대학을 방문했다.

57년 전 일제 식민지시대의 건립 당시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대학의 모습은 초라하고 외형상 낡아 보였다. 정문은 커다란 버스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협소하였으나 대학생과 교수의 복장, 행동에서 풍기는 검소함과 면학열은 우리나라 학교와 대조를 이루는 듯 했다. 데모가 없는 나라, 철저한 반공주의 국가라고 덧붙였다.

 

[한국4-H회 자부심 느껴]

4건회는 9세부터 25세까지 활동하면서 어려서부터 농업기초지식을 심어주고 농업에 대한 이해와 지도자 육성에 목표를 두고 중․고등학교와 농업희망자를 중심으로 4건회를 조직 도시․ 농촌 교류활동을 전개하며 연령별, 단계별로 분류하여 과제지도를 하고 리더쉽 배양에 역점을 둔다고 4건회 이사장인 대만대학 유청용 교수는 설명했다.

설명 도중 한국의 4-H활동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말에 연수단 일행은 한국4-H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었다.

타이페이에서 서북쪽으로 40Km정도 떨어진 양계 농가를 방문했는데 농장장 홍원육씨는 30대 초반의 젊은 농민이었다. 가축운수 합작사(우리나라 양계협회)에 모든 농가가 가입을 해 생산물중 80%는 납품을 하고 20%는 자가 판매하며 전문업과 기업농이 전체의 65%이며 35% 농가는 부업경영을 한다.

부화를 해서 6주 만에 1.9Kg의 무게로 생산해 판매를 하는데 1년에 평균 1마리가 800원의 높은 소득을 가져오며 홍수 출하가 되면 정부에서 잉여 생산물 전량을 수매하여 냉동처리하고 농가에서는 스스로 생산량을 조절하는 등 가격안정을 위한 자구책은 우리 농가에서도 본 받아야 할 것 같다. 한사람이 2만 마리를 사육하는 자동화시설을 갖추었고 한 농가가 폐업하면 폐수처리를 비롯한 제반환경 여건을 농회와 정부에서 엄격히 심사한 후 한 농가를 허가해 주어 모든 축산의 농가 증가율은 0%로 유지시키고 있다.

8월 17일 장대와 같이 굵은 비를 맞으며 국립고궁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에서 중국인들의 문화유산을 대하고 나니 그 옛날 찬란했던 중국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장개석 정부가 중국 본토로부터 62만여 점이나 되는 많은 문화재를 어떻게 운반했는지 놀라웠고 서화를 비롯한 섬세한 조각품들은 인간의 작품이 아닌 초월적인 작품으로 느껴졌다. 시간이 없어 그 아름답고 신비스런 작품을 더 감상하지 못한 채 떠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사치와 허세 없는 실리추구]

종합해보면 대만은 중국 본토를 뒤로한 채 우리나라 경상남북도와 제주도를 합친 만큼의 조그마한 섬나라이지만 민주, 민족, 민생의 삼민주의 정신 속에 똘똘 뭉쳐진 국민정신과 그들의 책임성이 중소기업을 발달시켰고 GNP 8천불의 경제부국으로 쉽게 발전할 있었으며 국제무역 의존도가 98%로서 수출왕국이라 일컫게 되었다. 개인, 가정, 사회공동체 생활에서 조상의 은덕을 숭상하고 절제하며 근면하고 검소하면서 저축심이 높고 협동하는 정신과 사치와 허세가 없이 실리를 추구하고 남을 속이지 않는 정직성,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는 우리가 본 받을만하다.

앞으로 더욱 충실히 영농후계세대 육성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며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연수의 기회를 가져 국가에 대한 애국심 고취와 견문을 넓히길 희망한다.

대만 농촌을 돌아보고

일정 : 1991년 8월 11일 ~ 8월 17일(6박7일)

인원 : 20명(4-H회원 17명 공무원 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