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중국 북경,청도여행

아침햇쌀 2011. 9. 7. 09:41

중국으로의 여행. 지난 2001년도 말에 2박3일 일정으로 북경을 다녀온지 10년만에 북경을 다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북경은 어수선했고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얼마나 변했을까?

그때 올라갔던 만리장성이 생각나기도 했지요

  

 

김포공항에서 북경 베이징까지 항공기가 취항한다고 하네요. 우린 김포공항에서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김포공항의 출국장은 한산했습니다. 복잡한 인천공항보다 이곳이 훨씬 좋은 것 같네요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잘 알려진 이화원은 북경시 중심에서 16km 떨어진 서북 교외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8년 유네스코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으로 산과 호수를 끼고 있어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중국 북방의 고전 정원이며, 세계적으로 풍경 조형이 풍부하고,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황실 정원이라 하네요 .

 

 

서태후는 1835년 안휘성의 몰락한 관리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은 매우 빈곤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애인 영록을 버리면서까지 궁녀가 되고 싶어 1851년 16세에 궁녀가 되어 자금성에 들어간 서태후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고 욕심 많고 진취적이었던 서태후는 궁녀 이상의 그 무엇을 원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함풍제 주변 환관들의 환심을 샀고 , 곧 이어 황제의 눈에 들었다합니다 .

 

 

 

그리고 그녀는 황제의 유일한 혈육인 아들을 낳았고 서태후는 일개 궁녀에서 일약 귀비로 뛰어 올랐죠.  

귀비가 되어 황제의 옆에 있다 보니 나라의 정사가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 것이고 황제의 후궁으로 황태자의 모후로 얌전히 사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던 서태후는 때때로 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함풍제는 그녀의 마음에 담긴 야망을 알아차리고 무척 경계하였다 하네요. 유일한 혈육의 어머니인 서태후가 훗날 폭주할 것을 두려워한 함풍제는 서태후를 죽일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서구 열강의 북경 침범과 피난 과정에서 함풍제는 31세에 요절하고 유일한 후계자인 황태자의 어머니 서태후. 그녀의 6살 난 아들 동치제가 황제가 되자 서태후는 수렴청정을 시작했고 마침내 그녀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 합니다.

 

 

이화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곤명호는 인공호수지만 인공호수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납니다.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 스케이트도 타고, 여름에는 보트와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지요.

 

 

멀리 곤명호를 전망할 수 있는 누각은 올라가보지 못했어요. 멀리서 바라만 보았지요.

얼마나 누려야 다 누렸다고 해야 할까요, 여름별장까지 지니고 누렸던 서태후

 

아주 저 멀리까지의 거리를 다 누리고 다녔을 서태후, 그녀의 여름별장 이화원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 호수를 끼고 천천히 걸으면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여름의 풍류를 만끽했으리라 짐작해 볼만 합니다.

 

만리장성은 전국시대 당시에 조, 연, 진 3국이 장성을 쌓았다고 하죠. 기원전 221년에 진시황제가 연과 조의 장성을 연결하고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대비해 서쪽으로 더 연장시켰다고 합니다

 

 

한대에 무제가 우웨이와 주취안에 장성을 연장하였고 남북조 시대 때 북주와 북제가 성벽을 대규모로 축조하였다고 하죠. 수의 양제가 장성을 보수하고 오르도스 남단에 새로운 장성을 쌓았고, 금이 타타르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싱안링 산맥에 대규모로 장성을 쌓았으며 명의 영락제가 지금의 만리장성을 쌓고 동쪽 산해관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명의 정통제가 북경 정면 부분에 2중으로 장성을 쌓았고 명의 가정제가 대대적으로 장성을 개축하여으며 이후 16세기에 지금의 만리장성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만리장성은 6,352km라고 합니다. 북경에 위치한 만리장성은 세계 7대 불가사리중의 하나이며 중국인의 자부심이며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만리장성의 코스가 5개 코스인데 그중 이곳 거용이 경사도가 제일 심하고 아름다운 코스라 합니다. 이곳 만리장성을 거용관 장성이라 합니다.

 

 

모택동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장성을 넘지 않으면 사나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거용관 장성의 정상을 올랐단 말입니다. 위에 사진중 손 들고 기념사진 찍은 뒤편이 정상이죠.

 

 

한글도 있는걸 보니 한국 사람도 많이 오는 추세랍니다

 

 

우리나라 남산에도 있는 것 같은데 열쇠 아닙니까. 젊은 연인들이 열쇠를 이곳에 채워 놓고 간다고 하죠. 인연이 끊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채워둔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남산의 열쇠는 아름다운 모양과 여러가지로 디자인되어 아름답게 걸려 있는데 만리장성의 열쇠는 열쇠 그 자체로 채워져 있네요. 열쇠의 역사는 만리장성에서 비롯됐다고 하는 것 같은데....

 

 

북경 시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천안문 광장은 중국사람들의 드넓은 기개를 대표하는 명소랍니다. 천안문 광장은 원래 1651년에 설계되었고 1958년에 시멘트로 접합되고 네 배나 큰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지금 전체 면적이 44만㎡이며, 동시에 백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 중의 하나로 꼽힌다고 합니다.

 

 

또한 여러 개의 인상 깊은 건축물들이 주변에 들어서 있습니다.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은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천안문, 동쪽은 중국 국가박물관, 서쪽은 인민대회당, 그리고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당이 있습니다. 광장의 중심에는 중국 인민영웅기념비가 서 있고요. 천안문 광장은 옛 부터 대규모 군중시위, 집회, 행렬, 경축 행사 등이 이어져 오고 있는 곳이지요.

 

 

모택동기념관입니다.

썩지 않도록 처리하여 유리관에 뉘어져 있는 모택동 시신을 보기 위해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단 1초도 머무를 수 없고 그냥 그 시체가 있는 유리관을 지나갈 수 있을 뿐인데도 하루 종일 줄을 서서 이렇게 기다립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도입한 모택동은 일제와의 싸움에서 장개석과의 연합에서 실리를 취하고 결국 1949년 장개석을 대만으로 축출한 뒤 중국을 완전히 공산화시켰습니다. 1949년 혁명 군사위원회 주석, 1950년 임시 국가수반을 거쳐 1954년부터 1959년까지 초대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을 지냈습니다.

 

1959년 국가주석에서 물러난 뒤에도 후임 주석으로 오른 류사오치가 마음에 안 들자.. 실각시키는 등 사망 직전까지 실권자로 있었습니다.

 

 

모택동은 분명 중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지만 대약진 운동으로 2천5백만 명이 죽고 문화대혁명으로 3천만 명이 죽고 기아로 3천5백만 명이 죽는 등 모택동 당시 중국은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모택동기념관 방문을 일생의 소원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마지막 황제의 배경인 자금성. 1987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자금성은 명청대를 거쳐 약 500년 동안 24명의 황제가 기거했다고 합니다. 건축기간 13년. 명나라 3대 영락제의 작품이라고 하죠. 자금성의 기와는 황금색입니다. 황제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태화전은 큰 행사와 즉위식에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자금성은 나무가 없고 바닥엔 돌을 깔았습니다. 나무에 자객이 숨지 못하게 하고 땅굴을 뚫어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랍니다. 

 

 

보화전. 명대에는 황제가 큰 의식을 치르기 전 의복을 갈아입던 장소로 청대에는 섣달그믐, 정월 15일, 귀족과 12품 대신을 위한 연회 등 다양한 행사를 이곳에서 거행했다고 합니다.

 

중화전은 황제가 태화전에 가기 전 잠시 쉬던 곳이고요. 건청궁은 명나라 시대에 황제의 침궁으로 이용되었던 곳입니다. 14명의 황제들이 이용하였다고 하네요. 경복궁에서는 교태전이 왕비의 침실이지만 이곳에서는 연회나 명절 등에 황실가족들이 축하파티를 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곳곳에 이렇게 커다란 금속 단지가 있습니다. 불이 나면 이용하는 방화수라는군요. 옛날에는 이걸 통째 금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걸 담당했던 사람이 금을 빼돌리고 도금을 해놓기도 했다고 하네요.

 

 

후원으로. 어화원. 후원은 생각보다 아기자기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바로 어경정이라는 정자인데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고 황제와 황후가 올라가 바깥 풍경을 보던 곳이라네요. 아무래도 자금성을 나서기가 힘드니 그럴 수 밖에 없었겠죠..

 

그 아래 기괴한 돌 무더기들은 퇴수산이라는 것으로 수석들을 달걀 외 기타 등등의 재료들로 붙여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비가 오면 퇴수산으로 물이 흡수되고 이후에 다시 물이 졸졸 흘러나온다고 하네요. 서태후가 이 모습을 좋아해서 맨날 저기에 물을 뿌려놓고 감상했다고 합니다.

 

자금성을 통과해 나오자 경산공원 꼭대기의 만춘정이 보이는데 높이 43m이며 북해를 판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이랍니다.

해자. 폭이 52m이고 깊이가 무려 6m라는데 이건 거의 저수지 아니가요?

 

 

명 13왕릉입니다. 중국의 13왕릉은 북경 북쪽에 있는 명왕조 왕릉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명대의 황제는 모두 16명인데 그중 13명의 왕릉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13릉"이라 일컫는다 합니다.

 

 

역대 황제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아직 발굴된 건 몇 개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위치는 어디인줄 알고 있지만 중국의 기술로는 자칫 잘못해서 유물을 훼손할까봐 그냥 그대로 두었다고 합니다.

 

 

명13릉의 조감도와 위치도입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릉의 모습은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중국의 풍습이라는 군요. 도굴꾼들이 릉의 입구를 찾지 못하도록 가입구를 많이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붉은 무자비 비. 이는 만력제 주익균을 위시해 세운 비석이랍니다. 주익균은 명대 13대 황제로 만력황제를 말하는데 그는 10살의 나이에 황제에 올랐으나 주색에 빠지고 국고가 탕진되는 등 명왕조를 쇠퇴의 길로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는군요.

 

따라서 후세의 사람들은 그를 기릴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다는 이유로 비석에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았다 합니다. 그래서 글자가 없는 비석, 즉 무자비석이라는군요. 자신의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이 너무도 잔인한 보복으로 돌아온 셈이죠

 

 

북경올림픽공원입니다. 넓은 광장엔 나무도 없고 그늘이 없어 땡볕에 한창을 걸어서 주경기장 근처에 왔지요. 우리나라 박태환 선수가 수영에서 금메달을 딴 곳이 바로 저기랍니다. 공같이 볼록볼록 나온 네모 반듯한 건물. 저 곳이 수영장이고 그 옆에 우뚝 솟은 건물은 북경 최고의 7성급 호텔이라네요. 

 

 

청도의 시립박물관입니다. 꽤나 많은 유물들이 있습니다. 이곳이 공자의 고향이라고 합니다. 태산이 바로 이 지방에 위치해 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청도는 맥주가 아주 유명한 곳이라는 군요. 마침 청도맥주축제가 열리고 있었는데 시간관계로 축제장 그 앞만 지나쳐 온게 못내 아쉬웠답니다.

 

청도에서 수광시로 이동하는 길가에는 은수원사시나무와 미류나무 등이 심겨져 있고 그 뒤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옥수수 밭이랍니다. 어마어마 하네요. 장장 2시간 30분이나 달렸는데 계속 옥수수밭이었으니 .... 이곳에서 생산되는 옥수수는 기름을 짜는데 소요된다고 합니다. 혹시 우리가 먹는 옥수수기름도 이곳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도로 중앙 분리대를 꽃이나 잔잔한 꽃나무로 만들었답니다. 청도에서 수광시까지 가는 도중 내내 도로가 그렇게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고속도로 가는 도중 교통사고 난 것을 한 건도 보질 못했는데 그 이유는 이런데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도로는 어수선하죠. 차가 뒤엉퀴고 역주행 모습도 자주 볼 수있었는데 차가 서로 양보해 주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차량들이 서행 한다는 것. 옆에서 차가 튀어 나오면 설 수 있는 여유가 있잖아요. 바로 교통사고가 없는 비법인 것 같습니다.

 

이곳은 휴게소랍니다. 우리나라 휴게소와는 대조적이죠. 캐나다나 유럽쪽에도 가보았지만 그 곳 휴게소 역시 조용하답니다. 그냥 화장실 정도 다녀가는 곳이 휴게소 개념인 듯 했습니다. 우리나라 휴게소는 먹자판이잖아요.

 

 

 청도에서 2시간 30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니 수광시라는 조그마한 도시가 나왔습니다.

중국 최대로 야채를 재배하는 단지가 있는데 규모가130만평이라고 합니다. 주로 배추와 대파, 청경채 등이 생산되고 있다네요.

 

이곳 중심부에 수광시 야채고급과학기술시범원이 있습니다. 규모가 어머어마 합니다. 야채원을 상징하듯 멀리 아주 멀리에서도 잘 보이도록 배추와 청경채로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곳에서 2012년 4월 20일부터 5월 20일까지 중국 국제채소과기박람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박람회를 준비하는 온실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입장료가 한국 돈으로 1인당 4천원, 우린 두 곳을 견학했습니다.

 

그런데요 모든 조형물들이 곡물이나 채소, 실물로 만들어 놓았지 뭐예요.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에 망똥 레몬축제에서 레몬으로 조형물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놀란적이 있는데 이곳 역시 또 색다른 모습으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시간이 되면 내년 박람회에 꼭 가고 싶습니다.

 

 

중국으로의 여행, 짧지만 아주 유익한 여행이 되었답니다. 중국은 원래 넓고 역사가 깊으니 볼거리가 아주 풍부한 나라라고 생각됩니다.

북경, 청도 정말 아름답고 깨끗하게 잘 정돈되었고 이제 중국 자국민들도 관광에 눈을 돌렸으니 내수만 하더라도 관광산업이 급성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