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야기

남쪽은 떡국, 북쪽은 만두국

아침햇쌀 2010. 2. 11. 08:17

옛부터 설날이 되면 세찬과 세주를 마련하여 차례를 지내고 손님을 치렀죠. 설날 상차림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이 바로 흰떡으로 만든 떡국인데 각 지역에 따라 재료와 만드는 방법에서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각 지역의 특산물로 차려낸 설 음식 한 그릇에서도 우리는 조상들의 빛나는 지혜와 재치를 느낄 수 있답니다.  

 

농촌의 생활상을 정교하게 월령체로 읊은‘농가월령가’는 철 따라 변하는 농삿일은 물론 우리 민족의 인정과 시식(時食)을 담은 귀중한 풍속도라 할 수 있습니다. ‘ 농가월령가’중 정월(설날) 음식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봅니다.

우리는 설날 아침에 세찬과 세주를 마련하여 차례를 지냅니다. 그 세찬 가운데 하나가 바로 흰떡으로 끓인 떡국이죠. 떡국을 먹는 풍습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동국세시기」에 따르면 고구려 유리왕 이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설날 먹는 떡국에는 흰색의 음식으로 새해를 시작함으로써 천지만물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뜻이 담겨 있으며, 예로부터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고 하여 한 살을 더 먹는 상징으로 여겼답니다.


떡국은 보통 가래떡을 동글 납작하게 썰어 양지머리 또는 꿩고기 국물에 끓여 청장으로 간하고 고명을 얹습니다. 예전에는 꿩고기를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구하기가 힘들어 쇠고기나 닭고기를 주로 사용하는데 멸치 장국으로 국물을 내어도 좋습니다. 고명할 쇠고기는 도톰하게 썰어 갖은 양념을 하여 구워 놓고, 장국용은 잘게 썰어 파를 넣고 끓입니다. 흰떡을 얄팍하 게 썰어서 팔팔 끓는 장국에 넣어 떡이 위로 떠오를 때 그릇에 담아 쇠고기 구운 것, 달걀지단, 김, 잣 등을 고명으로 얹고. 떡국을 맛있게 끓이려면 양지머리로 맑은 국물을 내고, 떡이 퍼지지 않도록 끓여 청장으로 간을 합니다.


설날 상차림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떡국이지만 지역에 따라, 재료와 만드는 방법 면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고기 또는 멸치 장국에 떡과 쇠고기 고명 등을 넣어 끓이죠. 떡국과 더불어 특징적인 음식으로는 ‘장김치’가 있습니다. 일반 김치는 소금으로 절여 간을 맞추는데 장김치는 무, 배추를 간장에 절였다가 밤, 대추, 배, 잣, 표고 등을 넣고 국물을 부어 새콤하게 익혀서 명절 또는 큰일을 치를 때 주로 떡과 함께 내 놓습니다. 국물의 색은 엷은 간장 빛이 돌고 약간의 달착한 맛과 표고 향이 나는 맛난 김치입니다. 젓갈과 고춧가루는 쓰지 않으며 중부지방이나 궁에서 해 먹던 것이죠.


개성지방은 가래떡을 가늘게 비벼 늘여서 나무칼로 누에고치 모양으로 잘라 끓이는‘조랭이떡국’이 유명합니다. 예전에는 정초에 길함을 표시하기 위해 일일이 정성들여 누에고치 모양으로 만들었죠. 귀여운 모양 만큼이나 입안에서 쫄깃하게 씹히는 질감이 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충청도에서는 ‘생떡국’이 유명하죠. 생떡국은 찌지 않은 쌀 반죽으로 떡을 만들어 가래떡처럼 길게 늘여서 어슷 썰어 끓이는데 ‘날떡국’이라고도 합니다. 쫄깃함은 일반 떡국보다 덜하지만 반죽이 국물에 우러나 구수한 맛이 나죠. 육수는 소금으로 간을 한 굴이나 바지락을 이용해 뽀얀 색깔 국물이 우러나게 합니다.


전라도에서는 토종닭을 토막 내 집 간장에 졸여 낸 닭장으로 떡국을 끓이는데 간간하면서도 달큰한 장맛이 특징인 ‘닭장떡국’은 장맛이 일품인 전라도 음식의 특색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경상북도에는 경주(崔氏) 종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태양떡국’이 유명하죠. 떡 모양의 잘려진 모양이 둥근 해와 비슷하다 해서 태양떡국이라 불리는데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오면 한 살을 더 먹으니,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동그란 해를 하나 먹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경상남도에서는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굴을 이용한 ‘굴떡국’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쇠고기 대신 굴을 사용하기 때문에 해산물 특유의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특징입니다. 굴을 먼저 넣어 국물을 우려낸 후 떡을 넣어 만드는데 조개나 새우 등의 해산물을 다져 넣어 감칠맛을 더하기도 합니다. 또 멸치 장국에 생굴, 두부 등을 넣어 만들기도 합니다.


과거 강원도에서는 설날에 떡국 대신 주먹만한 만두를 넣어 만든 ‘만둣국’을 먹었답니다. 동해 바닷물로 간을 맞춘다는 초당두부로 유명한 강릉에서는 떡만둣국에도 두부를 숭숭 썰어 넣었죠. 두부 특유의 부드러움과 깔끔한 맛을 함께 즐길 수 있으며, 국물맛 또한 진합니다.


함경도, 황해도 등의 북쪽 지방도 ‘만둣국’을 끓이거나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었는데 크기가 매우 큽니다. 북쪽 지방에서는 쌀농사를 짓기 힘들어 떡국 대신 밀, 메밀 등으로 만든 만두(국)를 즐겨 먹었다고 합니다.


평안도에서는 음력 정월에 세배 오는 손님들에게 남쪽 사람들이 떡국을 대접하듯이 ‘온반’을 내 놓았다고 합니다. 온반은 밥에 뜨거운 고깃국을 부은 장국밥으로, 잔칫날에도 대접하는 귀한 음식이었죠. 평안도 사람들은 추운 겨울철에도 찬밥이나 따뜻한 밥에 뜨거운 국물만 부으면 밥이 먹기 좋을 만큼 따뜻해지니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밥을 그릇 맨 밑에 절반쯤 담고 삶은 당면을 덮습니다. 그 위에 볶은 느타리버섯과 표고버섯, 갖가지 양념을 넣고 무친 쇠고기, 황백지단, 실고추, 그리고 설핏 구워 부순 김 등 웃고명을 얹어 상에 올리기 바로 전에 펄펄 끓는 쇠고기 장국 국물을 부어 냅니다. 웃고명이 저마다 독특한 맛을 지닌 것인 만큼 이 평안도 온반을 먹을 때에는 실제로 딴 반찬이 별로 필요가 없고 시원하고 담백한, 맵지 않은 김치 한 가지면 족하다고 합니다(대원사에 발행한‘겨울음식’참조).


같은 떡국 한 그릇이지만 각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해 만든 설 음식에는 우리 조상들의 빛나는 지혜와 재치가 묻어 있습니다. 매년 끓이는 떡국이지만 올해에는 조상의 지혜와 풍유를 가득 담은, 특별한 떡국을 끓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린매거진 2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