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야기

찬밥 신세 전락한 ´쌀밥´ 소비 늘려야

아침햇쌀 2010. 2. 9. 11:26

정초부터 북한의 김정일이 쌀밥타령이다. 1월 9일자 노동신문은 김정일이 “수령님은 인민들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 유훈을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김정일은 또 “아직 우리 인민들이 강냉이밥을 먹고 있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는 말을 했다”고 지난 1일 노동신문이 전했다.

김일성의 ‘이밥에 고깃국’ 얘기는 지금으로부터 60년도 더 이전에 나온 말이다. 그는 해방 직후 평양에서 가진 첫 군중대회에서 “공산주의란 이밥(쌀밥)에 기와집을 지어주는 것”이라고 외쳤다. 1958년 1월 경공업 부문 열성자회의에서는 “조선의 농민들은 기와집에서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면 부자라고 했다”며 “이는 우리 농촌에서 머지않은 앞날에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1962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김일성은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6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대를 이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켜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체제와 제도상 지켜질 수가 없다.

광복 이후 국토가 남북으로 갈리면서 남한은 경쟁과 사유재산을 토대로 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선택했다. 반면 북한은 사유재산을 부인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택했다. 그러고 나서 6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북한은 최악의 경제난 속에 먹을 것이 없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남한은 쌀이 남아돌아 이를 어떻게 소비해야 할지 땅이 꺼지도록 걱정하고 있다.

이를 지켜본 우리는 한 나라의 체제와 지도자가 한 나라의 경제와 민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문득 깨달으면서 우리가 선택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가치를 새삼 재음미하고 그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품종개량과 과학영농 덕분에 날을 따라 쌓여가는 쌀을 처분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쌀 소비 촉진 문제를 들고 나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서울 가락본동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서 열린 ‘제45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정부가 쌀을 싸게 공급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며 “그게 소비를 촉진하는 길”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쌀 소비를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의 쌀 소비 추진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첫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연간 쌀 보관료가 6,000억 원이 되는데 이런 보관비용을 감안하면 묵은 쌀값을 낮춰 기회비용의 개념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고 “쌀값이 비싸다는 설명이 있는데 적극적인 사고로 대처하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이후에도 이 대통령의 쌀 소비 촉진은 계속됐다.

그런데도 쌀 소비는 해마다 늘지 않고 되레 줄어들면서 쌀농사는 저지난해에 이어 작년에도 대풍을 이뤄 공급 과잉은 이제 구조적인 문제가 됐다. 공급 과잉으로 쌀값이 크게 떨어져 농민은 아우성이고 정부와 지자체도 쌓여만 가는 쌀 문제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상반기 기호식품인 커피믹스가 필수품인 쌀과 봉지라면을 제치고 매출 1위를 차지하면서 대형마트의 쌀 판매가 3위로 줄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인천 &65381강화 소재 쌀 국수 생산업체를 찾아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고 “국내 쌀 수요가 계속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간 16만 톤에 달하는 쌀 잉여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소비 진작방안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이에 정부는 즉각 가공용 쌀 공급가격을 30% 낮추고 쌀 제분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등 밀가루시대에서 쌀 전성시대로 바꿔나가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지와 정부의 노력만으로 남아도는 쌀을 다 소비할 수는 없다. 국민 모두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쌀 소비가 줄면 쌀 가격이 폭락하고 재고량이 쌓이면서 정부 지출까지 늘어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농민과 국민 모두가 그 폐해를 떠안게 된다. 따라서 국민 각자가 쌀 소비에 적극 힘을 보태야 한다.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쌀 소비 촉진” 발언 이후 식품업계가 앞 다퉈 신제품을 개발 &65381출시하여 일부 제품은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쌀 소비 촉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쌀 국수사리를 넣은 설렁탕이 등장했고 쌀 라면과 쌀 막걸리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최근에는 쌀 과자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원래 우리 민족의 (쌀)밥 사랑은 유난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속담에는 (쌀)밥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요 ‘꽃구경도 식후경’이란 속담이 있는가 하면 ‘가을 식은 밥이 봄 양식이라’든가 ‘밥술이나 먹게 됐다’는 등 밥과 관련된 속담이 많다. 쌀을 주식으로 한 우리민족의 삶 속에서 쌀과 밥이 갖는 의미와 그 중요성을 말해준다.

먹는 것이 남부럽지 않은 삶의 상징이자 목표의 가치처럼 여겨졌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1년 내내 쌀밥 구경 한번 못하다가 생일날 아침에 겨우 쌀밥 꼴을 본 경우도 많았다. 생활이 풍족해지면서 지금은 거짓말처럼 여겨지지만 ‘쌀밥’은 한 시대를 이해하는 상징적인 어휘였다. 쌀과 밥이 갖는 의미는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시골에 가면 지금도 아랫사람이 웃어른들에게 드리는 아침 인사말이 “진지잡수셨습니까?”이고, 웃어른들의 아랫사람에 대한 응대도 “밥은 먹었는가?”이다. 밥 먹는 일이 곧 안부와 직결될 만큼 쌀과 밥은 우리들의 중요한 일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쌀은 절대적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영양학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우리 속담에 ‘밥 한 알이 귀신 열을 쫓는다’ 했고 ‘밥이 보약’이라 했으며 ‘밥심으로 산다’고도 했다. 밥이 곧 영양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속담들이 무색하리만큼 쌀밥이 찬밥 신세로 추락하고 있다. 1인당 하루 밥 두 공기를 겨우 먹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니 말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2009년 양곡연도 가구 부문 1인당 양곡 소비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74.0㎏으로 전년(75.8㎏) 대비 1.8㎏(2.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으로 정점을 찍은 뒤 등락을 보이다 1984년(130.1㎏) 이후 줄곧 내림세로 2006년(78.8㎏)부터는 쌀 한 가마니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서구화된 식습관에다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육류소비가 늘고 대체식품이 많이 등장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된다.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빵과 떡, 국수, 라면, 즉석밥, 시리얼 같은 대체식품의 소비가 느는 등 식생활이 다양화되면서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식량안보와 미곡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쌀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쌀밥 소비 확대 운동과 함께 쌀 가공 식품개발과 새로운 수요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한다.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 등으로 우리도 언제 식량난에 직면할 줄 모른다. 추락하는 쌀값으로 농민들이 쌀농사를 등한시함으로써 식량안보에 구멍이 뚫리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지금부터 쌀 소비에 적극 동참하여 우리의 식량주권을 미리미리 지켜야 한다.

그 방안의 하나로 2007년부터 일본 정부와 민간이 함께 벌인 쌀 소비 확대운동이 필요하다. ´아침잠을 깨우는 밥´이라는 구호로 아침밥을 거르지 말자고 독려한 캠페인에 힘입어 아침식사로 밥을 먹겠다는 사람이 늘었고 밥의 효용성에 대한 인식도 나아졌다고 한다. 우리도 아침에 밥을 먹자는 캠페인 등을 벌인 적이 있지만 일회성에 그쳐 지속적인 효과를 얻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생명산업인 쌀농사를 잘 지어 국민들의 소중한 밥상을 지키고 우리땅에 생명을 불어넣어 농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면서 우리농촌을 회생시킬 수 있도록 쌀 소비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 톨의 쌀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며 하루 밥 세끼 먹기와 불우이웃에 쌀 보내기 캠페인 등을 벌여 우리의 건강을 지키고 농민과 농촌, 그리고 이웃도 살리는 일거다득의 효과를 거둬나가도록 해야 한다.

글/김영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