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상징하는 건물이라면 당연히 콜로세움을 꼽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 유적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경기장으로 플라비우스 원형 극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최근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기도 하였지요.
원형극장이라는 정식 이름이 있음에도 콜로세움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답니다. 다만 거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콜로사레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폭군으로 알려진 네로 황제가 세운 거대한 금도금 동상 '콜로소'에서 유래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아쉽게도 기록문화를 중시했던 로마인들이 콜로세움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고 하네요. 어쩐일일까?
콜로세움은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건축을 시작하여 8년 뒤인 서기 80년에 완공되었답니다. 건물 둘레가 527m나 되는 콜로세움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5만명에서 5만5천명이었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건축물이었지요.
4층으로 이루어진 콜로세움은 각 층마다 각기 다른 양식으로 꾸며진 건축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1층은 도리아 양식, 2층은 이오니아 양식, 3층은 코린트 양식의 기둥과 원형에 가까운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고 합니다. 출구와 계단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건설해 놓았고 황제와 귀족을 위한 통로를 따로 마련해 놓았으며 좌석도 신분에 따라 구분되어 있었답니다.
콜로세움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현대 건축물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대한 바위 위에 축재를 쌓고 다시 그 위에 풍부한 점토질을 다진 뒤 지었기 때문에 지진으로 발생하는 진동을 흡수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건축기술이 뛰어났는가를 짐작해 볼 만합니다. 로마의 여러 건축물이 지진으로 무너졌는데 콜로세움은 현재까지도 당당히 관광객을 맞고 있으니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몇년 전에 왔을 때 안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살펴 보았는데 이번엔 일정상 (?)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답니다.
콜로세움에서 검투사와 맹수가 싸우거나 결투를 벌이는 경기가 주로 열렸다고하죠. 중요한 기념일이나 행사 때는 경기장에 물을 채운 뒤 벌이는 해전 게임 같은 특별한 경기도 열렸다는군요. 이 곳에서는 실제 전투에서와 같이 서로 죽이는 경기를 펼쳤답니다.
경기장이 완공된 것을 축하하기 위한 경기는 100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이때 콜로세움에서 죽어나간 맹수가 5천마리가 넘었고 맹수와 싸움을 하거나 검투사끼리 결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콜로세움을 살펴보면 건물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부자들이 저택과 궁전을 짓고, 성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콜로세움의 대리석과 장식을 가져다 사용하면서 오늘 날과 같은 모습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좀 아쉬운 면이 있긴 하지요. 그런데 콜로세움은 현재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서로마 통일을 기념하여 세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입니다. 우린 이 개선문을 통과하여 콜로세움을 나와 진실의 입이 있다는 보카델라베라타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진실의 입. 로마 중심부에 위치한 코스메딘 산타마리아 교회 입구의 벽면에 있는 대리석 가면으로 진실을 심판한다고 전해오고 있는 얼굴 조각상입니다. 얼굴 앞면을 둥글게 새긴 대리석 가면으로 지름 1.5m정도의 크기이며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시대 때 가축시장의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중세 때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사람을 심문할 때 심문 받는 사람의 손을 입 안에 넣고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리는 것을 서약하게 한데서 진실의 입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심문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손을 자르도록 미리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진실의 입이 있는 보카델라베라타광장의 보카는 입, 베라타는 진실을 뜻하는 것으로 미루어 광장 이름도 진실의 입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네요.
우리도 손을 넣었는데 손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진실을 말하고 있었나 봅니다.